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단 편집) === [[선박 침몰 사고|유사 해상 사건 사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선박 침몰 사고)] (선박명 기준 ㄱㄴㄷ순) * 고창 심원면 거룻배 전복 사고 1986년 7월 30일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용기리 앞바다에서 29명이 탄 거룻배가 전복된 사고. 이 사고로 김을 따러 바다에 나갔던 용기리 주민 21명이 사망했다. 사고 거룻배는 최대 9~10명까지 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최대 정원의 3배에 달하는 인원이 무리하게 탑승한 게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 [[극동호 유람선 화재 사건]] * [[남영호 침몰사고]] * [[노르만 아틀란틱호 화재 사고]] 사실 이 사고는 [[이탈리아]]판 [[설봉호 화재 사고]]라고 해도 다름이 없는데, 왜냐하면 선장과 해경이 악천후 속에서도 재빠르게 대처한 결과 478명 중 468명을 구조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 [[도나 파즈호 침몰 사고]] 세월호처럼 일제(日製) 선박이다. 그리고 선장과 승무원들의 막장 대처로 인해 승객들을 더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늘어났다. * [[돌고래호 전복 사고]] * [[둥팡즈싱 호 침몰 사고]]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달리 생존 가능 시간이 지난 후에는 유족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인양을 강행했다. 중국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중국이 자국민의 인권마저도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짓밟는 [[독재]]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 국가에서는 이런 짓을 하다간 선거 대패가 확정적이다.] * [[르 줄라호 침몰사고]] * 마할리카 2호 침몰사고 * [[미라지 호 침몰사고]] *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언론의 추악한 행태 및 정부의 무성실한 대응책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 대한민국 영해에서 발생한 역대급 선박 사고라는 점에서 이 사고와 유사점이 많다. 다만 훼리호의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피난시키다 전원 배 안에서 사망해 먼저 탈출한 세월호의 대다수 승무원과는 큰 차이가 있다. *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사고]] 이쪽도 사고가 나자마자 선장과 선주가 제일 먼저 튀었다. * [[연호 침몰 사건|연호 침몰 사고]] 1963년 1월 18일 전라남도 목포시 허사도 근처 바다에서 과적과 돌풍으로 여객선 연호가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고로 무려 140명이 사망하였으며, 생존자는 당시 23세이던 서종수 씨 '''단 1명'''에 불과했다. * [[MS 에스토니아호 참사]] * [[오세아노스호 침몰 사고]] * [[용당포 야마시로호 침몰 사고]] 1924년 4월 25일 일본군 구축함을 관람하기 위해 [[해주시|해주읍]]내 [[보통학교]] 학생들을 태운 짐배 야마시로호(山城丸)가 군함에 접근하다 침몰한 사고. 일제강점기 단일 해상 사고로는 최악의 희생자를 냈으며 68명의 사망자 대부분이 보통학교 학생이었다. * [[토야마루|토야마루호 침몰 사고]] *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좌초사고]] 선장이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는 점에서 이 사고와 유사하다. 이 선장은 사실상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징역 2697년을 구형당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오보이다. 저런 몇백, 몇천 년에 이르는 징역형은 영미법계에서나 가능한 것이고 [[이탈리아]]는 영미법계 국가가 아니다. 검찰은 26년형을 구형했고, 1심 재판 결과 선장은 징역 16년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2/12/0200000000AKR20150212001400088.HTML|#]] 세월호 사건과 다른 점은 항만 당국자가 탈출한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라'고 여러 차례 명령했다는 것과, 사망자가 승객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킴니르바나 호 침몰사고]] * [[한성호 침몰사고]] 1973년 1월 25일(10월 유신 3개월 후) 목포한일기선 소속의 한성호가 진도군 지산면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고로 61명의 승객이 해를 입었다. 원인은 승객과 화물을 초과해서 실었음이 지적되었다. 구명대는 제공되지 않았고, 당시 선장이 아닌 갑판원이 배를 몰았으며 배가 좌초되고 파도가 심해지자 승객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선실 문을 밖에서 잠가버려 피해자가 많았다고 보도되었다.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6380|#]]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선장 김아무개는 승객을 버린 채 먼저 탈출을 했다. 또한 이 사건은 세월호와 유사하게 당시 어린 학생들(관매초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6525.html|#]] 세월호 사고와 침몰한 위치와 원인, 이후 정부 대처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인지 [[국민TV]] [[뉴스K]]는 8월 29일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6380|'참사의 대물림...1973년 한성호, 세월호와 판박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국민라디오 '주진우의 현대사 시즌2' 첫회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6706|대본]]. * [[해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참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